
차오르는
그
*상세히 묘사되지 않으나 (짭)근친 설정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밤이었다.
한참동안 잠을 뒤척이던 이혁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거칠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새까만 어둠 속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한참동안 응시하던 그는 결국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와 바로 옆에 있는 이동해의 방으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깊은 침묵이 내려앉은 집안은 거실에 놓인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요란했다. 이 세상에 깨어있는 사람이라곤 저 하나 뿐인 것만 같은 – 메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같은 정적 속에 이혁재는 가만 서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온 이후 부쩍 잠들지 못하는 밤이 늘어나고 있었다. 사실 그 전에도 수면이 양호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까지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새로운 집이 낯설어서 그런 건지 새롭게 바뀐 잠자리가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이혁재는 이동해의 방문을 두들겼고, 오늘도 그 여러 날들 중 하나였다.
이혁재는 굳게 닫힌 이동해의 방문 앞에 서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문 너머로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나지막한 옅은 숨소리 하나도 넘어오지 않았다. 이미 잠들었는지, 아니면 아직 깨어있는지 좀처럼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혁재는 문손잡이를 잡고 조용히, 잠금장치를 돌렸다. 맥이 빠질 만큼 방문은 쉽게 열렸다.
이동해는 방문을 잠그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라도 방문만큼은 열어두었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오로지 이혁재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그의 습관은 오롯이 저로 인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찾아오는 어둠을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한밤중에 침대로 슬금슬금 기어들어오는, 이혁재의 그 작은 습관 때문에.
이혁재는 어둠 속에서도 익숙하게 침대가 위치한 곳으로 다가섰다. 이동해가 누워있는 침대 바깥쪽 자리가 마치 자신이 올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비어있었다. 이혁재는 조심스레 이불을 들추고 그 빈자리에 몸을 뉘였다. 공간은 그에게 딱 알맞게 아늑했다.
이동해가 깨지 않도록, 그러나 약간의 불안이 가실만큼의 온기가 느껴질 만큼 가까이 몸을 붙이고 있으려면 불현 듯 이동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기운이 아주 가시지는 않은 – 낮게 잠긴 목소리였다.
“오늘도 잠이 안 와?”
“……응.”
“요새 부쩍 그러네.”
이동해는 약간 걱정스런 투로 중얼거리더니 제 곁에 누운 이혁재의 등에 팔을 두르고는 그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왔다. 이혁재는 이동해가 끌어당기는 힘에 못 이기듯 얌전히 그 품에 안겼다.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그의 시원스런 체취가 이혁재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와 동시에 남들보다 딱 1도 정도 높은 것 같은 따뜻한 체온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이동해의 너른 가슴팍은 마치 벽처럼 단단해서 도리어 안정감을 주었다.
이혁재는 말없이 이동해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몸을 가깝게 밀착시켰고, 등 뒤에 팔을 마주 둘렀다. 그리고 슬쩍 허벅지 사이로 다리를 집어넣었다. 순간 그의 몸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혁재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이동해의 가슴에 제 입술이 닿을 만큼 아주 가까이.
일정하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을 때마다 이혁재의 더운 숨결이 이동해의 가슴에서부터 작은 파문을 그렸다. 가장 뜨거운 숨결이 그의 가슴에 닿자마자 작은 원을 그리며 화악 퍼져나갔다. 온기는 이혁재가 그리는 동심원에서 멀어질수록 옅어졌다. 정적 속, 그의 심장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다. 이혁재는 대담하게 허벅지 사이로 집어넣은 다리를 아래로 움직여 그의 발끝과 자신의 발끝을 체온으로 이었다.
그 순간, 머리 위로 옅은 한숨이 비처럼 쏟아졌다. 몸이 일순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혁재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그가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기대감이 잔뜩 어린 미소였다.
이내 이동해가 입을 연다.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는 성대를 거칠게 긁으며 내뱉어졌다. 숨결마다 옅은 인내가 느껴졌다.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등을 토닥이면서.
“혁아.”
“……”
“오늘은 그냥 자자.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말고.”
“……알았어.”
순순히 대꾸하면서도 이혁재는 그의 허벅지 사이로 집어넣은 다리를 뒤로 물리지 않았다. 체온으로 이어져 있는 발끝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욱 깊숙이, 안쪽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들만큼 깊이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이전보다 이동해의 몸이 더욱 크게 움찔거린다. 이혁재의 새하얀 허벅지는, 체온이 또렷하게 느껴질 만큼 밀착한 거리감 덕분에 그의 것에 여지없이 닿아 있었다.
후우, 하고 이동해가 내뱉는 한숨소리가 커진다. 잠이 반절은 달아난 듯한 한숨소리였다.
이에 탄력을 받아 이혁재는 이동해의 등 뒤로 두른 팔에 힘을 준다. 그는 언제든지 이 팔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언제나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허벅지를 앞뒤로 움직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정적 사이로 스윽스윽, 감질날 만큼 느리게 천이 마찰하는 소리와 거칠어져가는 이동해의 호흡이 날카롭게 가르고 들어왔다. 등 뒤에 둘러진 그의 팔에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이혁재의 몸에도 덩달아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이동해의 손등 위로 핏줄이 두둑 불거지며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때쯤, 무어라 한 마디 하고자 그가 입을 벙긋 벌렸을 때쯤 이혁재는 귀신 같이 하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는 이제 장난은 끝났다는 듯 태연하게 이동해의 가슴팍을 슬며시 밀어내며 허벅지 사이에 집어넣었던 다리를 빼려는 순간, 이동해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면서 이혁재의 다리를 붙들었다.
“읏!”
순간적으로 허벅지에 이는 통증에 이혁재는 저도 모르게 옅은 신음을 흘렸다. 그 작은 신음소리가 깊은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제 스스로가 듣기에도 민망한 신음에 이혁재의 뺨이 순식간에 붉어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딜 도망가?”
“……”
“자는 사람 다 깨워놓고.”
이혁재가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이동해가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그의 뒷목을 감싸면서 끌어당겼다. 코앞에는 있는 얼굴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어둠 속에서도 이동해의 힘에 이끌려 도착하게 될 종착지가 어디일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이혁재의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말캉한 감촉이 선연하게 닿았다. 부드러운 입술은 한 차례 진득하게 맞물렸다 떨어졌다. 고작 가벼운 입맞춤 한 번에 기분이 고양되었다. 점차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그때까지는 어슴푸레 윤곽만이 떠오르던 그의 얼굴이, 저에게 보내는 시선이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시야에 박혀드는 기분이었다.
이동해는 짐승과 같은 눈동자로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이혁재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자신이 먼저 도발했으면서, 자신이 먼저 그를 부추겼으면서도 그가 그런 눈빛으로 저를 응시할 때면 등허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방안의 온도가 순간 낮아짐과 동시에 높아진 듯한 - 기분 좋은 오싹함이 척추를 타고 내려갔다.
그런 이혁재의 기대감을 읽은 것처럼 이동해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잠기운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입 벌려. 혀 내밀고.”
“……응.”
이혁재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평소에는 형이라는 호칭이 무색하리 만큼 이동해가 무어라 하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바빴으면서 꼭 이럴 때만 두말없이 그의 말에 순응했다.
이혁재의 붉은 혀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자마자 이동해는 다시금 그의 입술을 덮쳤다. 마치 상을 주듯이, 한편으로는 그의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이 부드러운 입술을 애무하다 수줍게 벌어진 잇새를 가르고 들어가 본격적으로 혀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입술 사이를 거칠게 파고 들어온 단단하고 뜨거운 살덩이는 거침없이 이혁재의 입안을 헤집었다. 말캉한 혀끝이 닿기가 무섭게 제게서 달아나는 이혁재의 혀를 붙잡아다 소리 내어 빨았다. 거친 호흡과 함께 비음이 섞인 옅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물론 이혁재의 것이었다.
어느새 두터운 제 팔뚝을 동아줄마냥 부서져라 쥐고 있는 이혁재의 양 미간은 괴롭다는 듯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이동해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맞물려 있던 입술을 떼어 낸 이동해는 친절하게도 혁재에게 잠시간 숨을 고를 시간을 주었다. 이동해에게 삼켜졌던 그의 거친 호흡이 한층 또렷해졌다. 방안은 온통 이혁재의 숨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이동해는 마치 앞이 훤히 보이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이혁재의 입술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입술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뜨거운 온기가 닿자마자 이혁재는 조금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동해를 올려다보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허공에서 그와 진득하게 시선이 얽힌 듯한 감각이 든 순간, 기다렸다는 듯 이동해가 타액으로 흠뻑 적셔진 입술을 손끝으로 지분거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혁아.”
“……응.”
“오늘 부모님 안 계시니까 신음 안 참아도 돼.”
“하지만…….”
“왜? 부끄러워?”
이혁재가 말끝을 흐리자마자 이동해가 으레 짐작이 갔다는 듯 그렇게 물었고, 이혁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그마한 머리통이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자마자 이동해는 웃음을 흘렸다. 평소와 같은, 그러나 아주 조금 더 낮은 웃음소리였으나 이혁재는 그 사이사이에 스민 그의 정염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웃음소리가 공중에 산산이 흩어져 사라지고, 정적만이 남았을 때 이동해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 등 뒤에 있던 그의 손은 입고 있는 잠옷을 들추고 가는 허리를 말없이 지분거리고 있었다. 그의 손길에 아래에서부터 열기가 피어오르더니 점차 머리가 몽롱해지면서 호흡이 더워졌다.
“뭐가 부끄러워. 나랑 몇 번이고 했잖아.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같이 잤으면서.”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좀.”
“아니면 신음 참으면서 하는 게 더 꼴려서 그래?”
그 말 한마디에 이혁재는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한 번도 그 사실을 제 입으로 말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눈치 챈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혁재에게서는 침묵만이 돌아왔으나 이동해는 그의 반응으로 그 대답을 짐작했다. 그리고는 가볍게 오르내리는 등을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며 조용히 웃었다.
“우리 혁재, 야해빠졌네.”
“……그런 말 하지 마.”
“왜, 사실이잖아. 형이랑 자고 싶어서 밤마다 찾아온 건 너야, 혁재야.”
사근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내뱉어진 말에 이혁재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동해와 저 사이에 있던 암묵적인 규칙이 그의 입에 담기는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기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그의 침대에 파고들어가 어리광을 부린 것도, 그와 겹친 몸에 닿은 온기에 내뱉는 호흡이 달아오를 때마다 슬며시 아래를 부빈 것도, 그렇게 결국엔 그와 몸을 섞기에 이르게 된 것도 전부 이혁재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날 이렇게 만든 건 형이잖아.”
이혁재는 억울해서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자신이 먼저 이동해의 방문을 두들겼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관계가 진전되고 나서는 도리어 그가 자신을 길들인 것 또한 확실했다. 몸을 섞은 이후의 이혁재는 모두 이동해가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이동해 역시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즐거운 듯 내뱉는 웃음소리가 그 증거였다.
“그러네. 혁재는 나 말고는 안기지 않으니까.”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내뱉으며 이동해는 몸을 움직여 한 마리의 짐승처럼 유연하게 이혁재를 덮쳤다. 좀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보며 나란히 누워있던 자세였으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혁재가 이동해 밑에 완전히 깔리게 되었다. 허리에서부터 등, 가슴으로 점차 올라온 이동해의 손길에 어느새 이혁재가 입고 있던 잠옷은 완전히 걷어 올라가 맨 살갗이 공기 중에 여지없이 모두 드러났다. 그의 품 안에 완전히 갇힌 이혁재는 어둠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이동해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렸다는 듯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던 무드등이 켜졌다.
어두웠던 사방이 밝혀지면서 이혁재는 저를 잡아먹을 듯 사나운 짐승과 같은 눈을 한 이동해를 마주했고, 이동해는 잔뜩 열이 올라서는 붉어진 눈가에 물기 어린 눈동자로 저를 올려다보는 이혁재를 마주했다.
순간 동시에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방안의 공기가 끝없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깊은 침묵 속에서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입술이 너나 할 것 없이, 다시금 농밀하게 맞물렸다. 얕은 신음이, 거친 호흡이 입술 사이로 삼켜졌다.
방안의 온도가 끝없이 높아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