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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terfly stroke

정윤화

*네임이 출생 전부터 발현된다는 설정

 

*사망소재 주의

 

 

 

 

“수습 기간 있을 거고, 그때는 90%......”

 

말이 귀에 들어오지 못하고 자꾸 겉돌았다. 집중은커녕 자꾸 핸드폰 생각이 났다. 결국, 잠금을 풀어 저 밑에 있는 이동해의 문자를 찾았다. 유통기한 지난 생각을 곱씹다 보니 속이 뒤틀렸다. 아르바이트 면접 도중에 뛰쳐나왔고, 집에 오자마자 핸드폰은 저 멀리에 던져놓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여름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채 눈을 감는다.

이면지로 뒤덮인 머릿속에선 누르지도 않은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갔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염소 냄새, 지겹도록 들은 코치님의 목소리, 수모와 머리카락이 맞물려 까끌거리는 소리까지...지겨운 꿈속에선 또 지난여름이 재생된다.

 

나는 태생부터 네임이 없었다. 엄마 뱃속에서 초음파로 보일 때도 어떠한 기미조차 없었는데, 사춘기가 다 지날 때까지 생기지 않았다.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언젠가는 생긴다며 조급해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제일 조급한 사람은 엄마였던 것 같다.

열아홉이 되던 해 1월 1일,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네임이 생기지 않는 경우는 흔치 않긴 했지만, 인터넷에 치면 몇 개 나올 정도로 사례가 있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어느 곳에도 보고된 적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엄마가 무너졌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병원 3층 바닥이 흔들린다. 당장 지진이라고 소리 지르고 피하고 싶을 정도로 바닥은 진동했다. 결과적으로 달라진 건 없었지만 그때부터 엄마 눈치를 조금씩 봤다.

 

 

 

 

 

 

“안녕하세요. 목포에서 전학 온 이동해입니다.”

 

여름방학을 딱 일주일 남기고 있던 19년도 7월, 서문 고등학교 이학년 오 반에 전학생이 왔다. 목포에서 18년간 살았다는 이동해는 반에서 유일하게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게 됐다. 이 시점에 온 전학생이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첫인사만 나눈 채 대충 엎드려 있었는데, 애들은 엄청 관심을 보였다. 팔 틈새로 자꾸 말들이 넘어와 귓속에 박혔다. 그때가 전학 온 지 한 시간째였고, 나는 확신 했다. 쟤가 내 옆에 앉아있는 동안 내 인생은 계속 시끄럽겠구나. 곧바로 이어폰을 꺼내 귀를 쑤셔 넣었다.

그렇게 한참을 푹 자고, 점심시간 종소리가 울릴 때 깼다. 얼마나 푹 잤는지 눈에 우스꽝스럽게 종이가 붙어있어 손으로 열심히 비볐다. 고개를 돌려 뒤쪽 게시판에 있는 점심 메뉴를 확인해보니 코다리 조림에 황탯국이길래 다시 그대로 책상에 박았다. 매점에도 사람 많겠지. 그래서 지갑을 챙기지 않고 일어났다.

신관 정문으로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어 쭉 걸으면 나오는 구관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올해로 삼 년째 사용 중이었다. 근데, 어라? 이 시간엔 아무도 없어야 할 수영장에서 철벅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물 위로 빼꼼 나와 있는 교복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젖은 채로 허벅지를 타고 딱 붙어있는 바지 때문에 정신이 잠시 멍해졌다. 수영복 안 입으면 못 들어오는데.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불러야 하나 생각에 잠긴 채로 수영하는 것을 몰래 지켜봤다. 단단하게 가르고 들어가는 것부터, 누구보다 부드럽게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까지. 사람 맞지? 쓸데없는 생각도 좀 들었다. 팔다리 멀쩡하게 달린 애한테 이런 생각을 하다니. 좌우로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털어내고 다시 걔한테 시선을 옮겼는데, 이번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열심히 눈을 돌리며 찾았는데, 갑자기 내 옆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러고는 초면부터 뜬금 없는 질문을 던졌다.

 

“넌, 수영하는 게 행복해?”

 

어이없었다. 7년 동안 수영을 해온 사람에게 수영 하는 게 행복하냐니.

 

"당연하지."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건가. 나도 모르게 발끈하며 대답했다.

 

“나도 한 번 해봐도 돼?”

“너 수영복이랑 수영모 있어?”

“없는데…. 그냥 체육복 반바지에 모자는 네 거 빌리면 안 될까?”

 

단호하게 거절하려고 했는데, 사물함에 있던 예비용 모자 하나가 머릿속에 번뜩 떠올랐다. 외부인이니까 그냥 안된다고 하면 되는데, 쟤는 듣는 사람이 거절할 수 없게 말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싫다고 말해도 결국은 이동해의 말대로 하게 됐다. 그게 내가 말하는 이유이자 변명이고.

 

“잠시만.”

 

미끄러운 바닥을 짚고 일어나 사물함까지 뛰어갔다. 걸어간다고 이동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밀려든 감정이 빠르게 밀려갈까 봐 뛰었다. 당장 내 눈앞에서 이동해가 수영하는 것을 봐야만 해소될 것 같은 감정이었기에, 이제는 걸쇠가 헐거워진 사물함을 열어 1학년 1반 이혁재. 작은 자수가 박혀있는 수영모를 챙겼다. 다시 2번 라인까지 뛰어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건네자 이동해가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었다.

 

“천천히 온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러게. 머쓱해진 나도 이동해를 따라 웃었다. 조급한 감정인지, 불안한 감정인지. 이동해가 긴 머리를 쓸어올려 수영 모자를 쓰는 도중에도 자꾸 이상한 환영이 겹쳤다. 쟤를 보면 자꾸 기시감이 찾아왔다. 분명 본 적이 없는데. 고요한 수영장 물 안에서 파도가 친다. 혼자 수영장 끝자락에 아슬하게 서서 생각하는 동안, 이동해는 모자를 다 쓰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물에 같이 들어가고 싶어서. 혼자는 무섭잖아.”

 

아까 혼자서 수영하고 있지 않았어? 물에 젖어서 허벅지며 종아리며 전부 달라붙는 싸구려 교복 바지로 나보다 더 빠르게 헤엄쳤잖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이걸 다 쏟아버린다면 몰래 훔쳐봤던 것부터 다 얘기해야 하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압은 목구멍을 위한 마개가 된 것 같다는 착각도 했다.

우리는 2번 라인 가장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떠 있었다.

 

“내기라도 할까?”

“수영복도 내 것이 아닌데.”

“그러면 네가 한 바퀴 앞에서 시작해.”

“그래.”

 

이동해는 곧바로 손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던지고는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 잠수를 했다. 왜 그러지? 안쪽에 뭐라도 있나 싶어 똑같이 잠수했는데, 걔는 마구 손짓을 하며 나를 물 밖으로 내보냈다. 이번엔 물속까지 들리게 큰 소리로 물었다.

 

“그 상태로 시작할 거야?”

 

내 목소리는 물속을 채우다 못해 수영장 벽면을 타고 울렸다. 이동해는 물속에 푹 잠긴 채로 팔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는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고는 준비 자세를 취했다.

 

“시작!”

 

목소리가 텅 빈 수영장 안을 꽉 채웠다. 물속까지 채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단단한 벽에 부딪혀 내 귀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출발했다. 내 나름의 배려였다.

그렇게 출발점에서 다리를 움직이고, 얼굴을 처음 물에 담갔을 때, 나는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나보다 한 바퀴는 앞에 있던 이동해가 바로 내 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물속에서 겨우 말을 했다.

 

“뭐해?”

 

모아뒀던 숨이 물속으로 퍼지며 뻐끔뻐끔 거품이 생긴다. 이동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한테 성큼 다가오더니 손을 들어 물거품을 톡톡 터트린다.

 

“너 뭐하냐고.”

 

이번엔 꽤 정색하고 말했다. 이동해는 그제야 바닥을 박차고 움직였다. 그러고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물 밖으로 나왔다.

 

“비밀 하나 알려줄까?”

“아니.”

“그냥 들어봐. 있잖아, 나 인어다?”

“......”

 

진짜라니까. 허연 형광등 아래서 내려갈 줄을 모르던 입꼬리가 내려간다. 그니까, 여기서 수영하게 해주면 안 돼?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선생님이 너한테 얘기하라고 하셔서. 네 맘대로 해. 대신 나 귀찮게 하지 말고.

 

 

 

 

 

우리는 그날 이후로 함께 수영했다. 발가락은 여름 내내 퉁퉁 불어있었다. 뜨거운 수영장 안에서 입술까지 새파래지면 이동해는 매번 내 손을 잡았다. 금방 식을 줄 알았는데, 온기는 내 폐까지 들어와 콕콕 찌르고 머무른다. 너무 더워서, 나는 자꾸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근데, 인어가 이렇게 따뜻해도 돼?”

“그럴 수도 있지. 저 바다 밑이 얼마나 추운데.”

“아니...... 인어가 따뜻하니까 뭔가...”

“뭐가?”

“해물찜 같지 않아?”

“미쳤니.”

“미안. 너무 정수형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빠르게 사과를 했다. 이동해의 푸른 비닐이 가끔 고등어로 보이긴 해도... 게다가 날 보며 웃을 때가 아니면 늘 펴져 있던 이동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지 헛기침도 몇 번 했다.

 

“정수형?”

“아, 너는 모르겠다. 내가 처음 수영부 들어왔을 때, 부장이었던 형 있어. 이미 졸업했지.”

 

표정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왜?”

“그냥…. 오래 살아야겠다 싶어서.”

 

이동해는 말을 끝내자마자 다이빙을 했다. 단단한 몸이 깔끔하게 물을 가르고 들어가더니 수영장 바닥에 손 닿을 거리에서 멈춘다.

 

“동해야, 물속에 있으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지 않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 ......”

“되게 신기하구 이상해. 우리가 큰 발견한 거 아냐?”

“......”

 

급하게 들어오느라 귀마개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귀가 먹먹했다. 이동해의 말이 드문드문 끊겨 들렸다. 뭐라고? 되묻는 말도 잘 나오지 않아 헛기침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도 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삐-하고 이명까지 들렸다.

 

“어디 아파?”

고개를 푹 숙이고 표정까지 찡그리자 이동해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내 옆에 섰다. 그날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가는 병원에선 네임이 생기면 곧바로 전화로 알려달라고 했었다. 네임은 어디에 생기나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크기는 어느 정도로 생기나요? 그것도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런 대화를 나눴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였다. 그럼, 생겼는지 모를 수도 있겠네요? 생기면 바로 아실 거예요. 당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정말 그랬다.

몇 번의 정밀검사를 거친 후 바로 퇴원했다. 네임이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전과같이 멀쩡한 몸 덕분이었다. 퇴원하자마자 바로 수영장으로 갔다. 쭉 병원에 있느라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동해는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다리에 팔을 끼고 말이다. 몸은 괜찮아? 응. 멀쩡하대. 한두 마디 나누고 이동해가 먼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대충 몸을 풀고 곧바로 뛰어들었다. 어라. 평소와 다르게 다리가 어색하게 움직였다. 얼마나 쉬었다고 이러는 거지. 열심히 움직이자 이제는 뻣뻣하게 굳었다.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호흡이고 뭐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 죽는구나. 딱 이 생각만 들었다.

또, 또 이동해 앞에서 기절했다.

 

 

 

 

 

수영장에서 저승이랑 하이파이브하고 온 이후에 혼자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물론 병원에는 알리지 않았다. 그냥 근육이 놀라서 잠깐 그런 거예요. 응급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심하는 눈치자 한 마디 덧붙였다. 원래 가끔 그래요.

세수할 때도, 샤워할 때도, 물을 흘려 허벅지를 적셨을 때도 몸은 이상증세 하나 없이 멀쩡했다. 안심하고 수영장에 발을 담그면 전기가 오른 것처럼 끝부터 찌릿찌릿했고, 골반께까지 물이 차면 침수 알람이라도 뜨는 것처럼 다리가 뻣뻣하게 굳고 알러지처럼 피부가 붉게 부어올랐다.

껍질이 생긴 기분이었다. 떼고 싶어 피가 날 때까지 손톱으로 긁어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조금씩 흘러내린 피가 모여 화장실 바닥이 붉게 됐을 때, 그제야 인정했다. 수영을 다시 하지 못할 것이란 걸.

좌절감 뒤에는 바로 이동해 생각이 났다. 아무런 말도 없이 수영장을 안 간 지 벌써 이주라는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걱정하는 말이 담긴 문자는 한 통도 오지 않아서 신경 쓰였지만, 말은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곧바로 후드집업을 챙겨 학교로 걸어갔다. 수영장 문을 열어보니 이동해는 또 그 자리에 있었다.

 

 

“이동해, 나 이제 수영 못 해. 다리 병신 돼서. 물속에만 들어가면 그렇더라.”

 

생각과 다르게 말이 세게 나왔다. 그냥 아파서, 라고 표현하면 나도 모르는 것까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툭 튀어나온 말에 이동해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내가 알아.”

“어?”

“내가 안다고. 고치는 방법.”

 

 

먼저 갈게. 이동해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더니 축축한 몸 위에 바로 후드집업을 걸쳐 입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에선 물이 뚝뚝 떨어져 발자국을 따라 길을 만들었다. 그리 거창하게 말해놓고 다음 날에도 바로 내 옆에 앉았다. 대신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고,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옷깃 하나 잡을 수 없는 속도로 뛰어나가더니 점심시간에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물속에서만 요리조리 잘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단단한 땅 밟고 있을 때도 그랬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땐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문자도 여러 번 보내봤지만, 답장은 딱 하나 왔다. 그것도 내가 보낸 문자와는 관련 없는 답이었다. 결국, 고민하다가 교무실을 찾아갔다.

 

"선생님. 동해 학교 언제쯤 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짝꿍이어서 그런지 걱정돼서요."

 

평소에 남한테 관심도 없던 놈이 이런 말을 하면 퍽이나 믿어주겠다. 이게 먹히지 않으면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하지. 머리를 핑핑 굴렸다.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동해? 1학년이야, 3학년이야?"

"네?"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1학년이냐, 3학년이냐, 아니면 여자반이냐. 선생님은 여러 질문을 던졌다. 아뇨, 아뇨. 제 짝꿍, 7월에 전학 온 이동해요. 키는 저랑 비슷하고, 매일 수업시간에 자서 저랑 쌍으로 혼나던 이동해요. 엄습하는 불안함에 마지막 문장은 갈라진 채로 나왔다. 선생님, 동해요......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꿈인가 싶어 양손을 들어 스스로 뺨을 때려봤지만 쓰라리기만 하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죄송해요. 제가 잠이 덜 깼나봐요.

그대로 교무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띠링, 문자 한 통이 왔다. 상단바에 뜬 발신인 이동해. 허둥지둥 꺼내다 한 번 떨어트려 액정에 자잘하고 넓게 금이 갔다. 급한 마음에 잘못 눌러 제일 첫 문자까지 올라갔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되는데, 나는 뭐에 홀린 것마냥 문자를 천천히 내렸다.

 

-네 짝궁 이동해. 번호 저장해둬.

-오늘도 수영장 와?

-내일은 닭갈비?

-정수형? 그 사람이랑 아직도 연락해?

 

바스러진 유리 조각이 손톱 아래에 콕콕 박힌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손이 덜덜 떨렸다.

 

-이혁재. 내가 방법을 알아.

 

사라진 이동해가 나에게 보냈던 문자.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어디냐고 묻는 문자를 보내도 답이 오지 않았다.

 

-혁아,

 

마지막 문자는 눈에 박히듯이 들어왔다. 눈을 비빌 새도 없이 발부터 움직였다.

얼마 전 기름걸레로 닦아 미끄러운 복도를 미친 듯이 가로질러 뛰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짧은 손톱이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쥔 채로 달렸다.

한 손으로 열다 미끄러져 두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끼익, 소리와 함께 보인 수영장 안에선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한 걸음 내딛자마자 인영은 그대로 물에 빠졌다.

풍덩, 눈앞에 뭐가 보이는지 확인하지 않고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내 다리가 돌아버렸다는 건 이미 정수리에 물이 닿은 후에 생각났다. 손을 뻗어 잡을 곳을 찾고, 짧은 손톱으로 물을 헤칠 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동해가 구해주겠지. 여러 상상이 거쳐 갔지만, 손에는 온기가 닿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코를 막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지만 물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다리가 움직였다. 동시에 수영장 바닥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빠른속도로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끊긴 장면들이 배치되지 못하고 얽힌다. 테이프 끈은 멈출 줄을 모르고 늘어나 지지직거린다. 순서를 모른다는 듯이 서로 손 잡고 뛰어다닌다. 내 앞에 또다시 이동해가 나타났다. 오후 한 시 반. 학교 구관에 있는 수영장 안. 멀쩡하게 서서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있는 이동해. 이것도 네가 한 거야? 도대체 몇 번째야? 묻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이젠 알 것 같았다. 이 정도 껴안는다고 곪지 않을 테니까. 곪아도 말 못 하고 거품이 된 너보다는 덜 아플 테니까.

 

"이동해. 나 다시 수영할게. 그니까 걱정 그만하고..."

 

또, 또 그런다. 목이 턱 하고 막힌다.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기적으로 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걱정 안 해. 너는 원래 잘하던 사람이잖아."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오른 내 앞에서 이동해가 말했다. 바뀌지 않는 하복 차림을 한 채로 사다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앉아 열아홉 중반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마주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동해의 볼을 감쌌다. 이동해도 나와 똑같이 행동했다.

우리는 서로의 볼을 감싸고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마지막엔 엄지로 살살 문지르며 쓰다듬기도 했다. 무언가 지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추하던 것을 끊어내기 위해...... 한참동안 손을 올리고 있었다.

 

"고마워. 이동해."

 

잘 가라는 말은 너무 모진 말인 것 같아서, 고맙다는 말을 먼저 보냈다. 이동해는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고 볼을 비비더니 짧게 입을 맞췄다. 갈게. 나온 것은 형태가 없어 결국 모양으로 끝났다. 나와 마주 앉아있던 이동해는 그대로 나를 쳐다보며 수영장에 빠졌다. 물의 마찰 소리 대신 바람 소리가 났다. 이혁재는 빠지지 않았다. 그때와 다르게, 뛰어들지 않은 수영장은 파동 없이 고요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긴 꿈에서 깼다. 반추하던 시간은 처음으로 다른 결말을 보여줬다. 위에 쌓여있는 먼지를 대충 털고 가방을 열었다. 수경, 잘 개어져 있는 수영복, 그리고 검은색 수영모 두 개.

 

1학년 1반 이동해.

 

하얀 자수는 지워지지도 않고 남아있었다. 오른쪽 가슴팍이 아려오다 이내 멈춘다. 귓가에서 맴돌던 이동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다 이내 사라진다.

 

 

 

 

 

"선생님. 저 재수 할게요. 늦어도 상관없으니까 수영 다시 하고 싶어요."

"몸은? 일단 진단서부터..."

 

잠가지지 않은 핸드폰 화면 속에는 여전히 문자 한 통이 떠 있었다. 굳이 지우지 않고, 내버려 두기로 한 번호의 문자.

 

"안 그래도 돼요. 그냥...... 괜찮아졌어요."

 

한순간에 나으면 그게 불치병인가. 그래도 전보단 괜찮았다. 그렇게 느꼈다. 꽉 막힌 목구멍이 열리고, 고정된 채로 눈물지게 아팠던 혀뿌리가 움직인다면 아프지 않은 거겠지. 다리를 얻으려면 목소리를 잃어야 한다던데, 둘 다 얻은 나는 무엇을 희생해서 태어난 건가. 결국, 내 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핸드폰은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예의 없어 보여도 괜찮았다. 공허한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를 위해서... 어쩌면 너를 위해서도.

 

- 혁아, 수영 그만두지 마.

 

여름의 마지막 날, 내게 남은 인어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동해야, 물속에 있으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지 않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 나도 그런 것 같아.

되게 신기하구 이상해. 우리가 큰 발견한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 나는......

 

우리가 같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 좋은 시간은 늘 빠르게 지나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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