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닿을 듯, 닿지 못하는 너에게
참깨
우리의 관계가 처음부터 연인 사이였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옆자리에 앉아 알게 된 우리는 그날 처음 본 사이 같지 않았다.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잘 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죽마고우가 되었다. 실과 바늘처럼 서로 어디를 가든 함께 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서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사귀냐고 놀리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저, 어린 나이에 칠 수 있는 장난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친했던 녀석들과 학교가 갈라졌다. 하지만 그 무리에서도 우리 둘만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등학교에서도 서로가 같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도 붙어있는 우리를 볼 때마다 징하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서도 그저 웃으며, 우리는 서로가 제일 친한 친구라고- 계속 강조하면서 넘겼었다. 창가 쪽 뒷자리에 엎드린 채로 잠든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깐 교무실에 다녀온 사이에 동해는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촌스러운 연하늘 색의 커튼이 살짝 펄럭였다. 바람 때문에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이 자는 데 방해가 될 거 같아 커튼을 묶기 위해, 혹여 깰까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다가갈 때마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곤히 잠들어 있는, 펄럭이는 커튼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모습에 심장이 떨려왔다. 그제야 친구라는 이름 속에 감추어져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정을 해보았다. 하지만 한 번 깨닫기 시작한 감정은 점점 커지기만 했고, 홀로 하는 짝사랑 때문에 끙끙거릴 수밖에 없었다. 졸업식이 다가올수록 나는 초조해졌고, 친구 사이로만 남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졸업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계속 타이밍만 노리던 나는, 지금이 아니면 힘들 것 같아 졸업식이 시작하기 전, 체육 창고 뒤로 동해를 불러내었다.
"여기는 왜? 우리 이제 곧 졸업식 시작해서 가야 해."
"동해, 동해야."
"응?"
"나 계속 너 좋아했어. 내 욕심인 거 나도 아는데! 지금 아니면 내 마음을 전하기 힘들 것 같아서…."
멋 하나 없는 칙칙한 체육 창고 뒤에서 눈을 질끔 감고 한 고백은 내가 생각해도 엉망진창이었다. 동해는 분명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던 애가 이런 칙칙한 곳에서 하는 고백이라니. 만약 나였다면, 눈곱만큼이라도 생기지 않을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막상 용기를 내서 고백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길게 이어지는 침묵이 꼭 거절인 것만 같아서, 이젠 친구라는 이름조차 가지지 못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질끔 감은 눈을 뜰 수 없었다. 맑은 웃음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나도, 라고 말하면 우리 오늘부터 1일일까. 혁재야?"
그렇게 우리는 졸업식 날, 친구에서 연인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편하게 기숙사에서 지내라는 부모님의 의견을 무시하고 고집부려 자취를 시작했다. 서로 다른 대학으로만 지원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선택한 것이 자취였다. 처음에는 반대도 심했었지만, 동해와 같이 지낸다고 하자 그동안의 반대가 무색하게 허락이 떨어졌다.
같이 지내면서 은근하게 틀어지는 부분이 생겨났다. 6년을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에게 모르는 부분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서로가 모르고 있었다. 어른들이 왜 항상 친구랑 같이 사는 거 아니라고 말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혁재야, 일어나야지."
"우움. 5분만 더어…."
"혁아. 벌써 그렇게 20분이나 잤어. 그러다 지각하면 어쩌려구."
"뽀뽀해 주면… 해주면 일어날게…."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달콤한 초콜릿을 삼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언제 한 번은 볼을 꼬집어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부터 했었다. 꿈이라면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그만큼 달콤한 것은 중독성이 강해 벗어나기 힘드니까. 하지만 내가 아무리 볼을 꼬집어 보아도 아픔만 느껴질 뿐, 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현실이라는 것이 와닿았던 것 같다.
동해는 항상 부지런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다녀온 후에 밥을 하고,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나를 매번 일어날 때까지 깨워주었다. 아침마다 5분만 더를 외치는 나를 깨우는 것이 힘들 법도 했는데, 싫은 내색 한 번 보인 적 없었다. 오히려 아침에 자고 있는 내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저 내 투정을 전부 받아주면서 이마부터 눈, 코, 입에 뽀뽀를 연신 해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느끼고 있는 이 행복이 한순간에 와장창 깨져버릴 줄 몰랐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우리의 관계는 영원할 줄만 알았으니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영원한 게 없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만약,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우리에게 변화가 있었을까. 동해야.
"나 다녀올게, 혁재야."
"뭐 빼먹은 거 없이 잘 챙겼지? 다시 확인 안 해봐도 되겠어?"
"응응. 내가 한두 살 먹은 애인가? 잘 챙겼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주일 동안 나 보고 싶어도 참아."
"전화, 할게. 도착하면 연락해. 동해야."
갑작스럽게 잡힌 출장으로 인해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길게 떨어지는 건 군대 이후로 처음이라 적응이 되질 않았다. 비행기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발걸음을 돌려 우리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두 시간 후면 호텔에 도착하겠지? 빨리 도착해서 연락이 오면 좋겠다.
띡띡. 띠리릭.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까와는 다르게 차가운 공기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사람 한 명이 없을 뿐인데, 평소에는 꽉 찬 것처럼 느껴지던 집이 유난히 텅 비어 보였다. 동해가 없는 빈자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쓸쓸함을 이겨내 보고자 거실에 텔레비전을 틀어 볼륨을 한껏 올린 후,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초코라떼를 진하게 타서 베란다로 나왔다. 높은 층수 때문에 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가 된 것처럼 작게 보였지만,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
"그나저나 내일 비가 오려나? 날이 갑자기 흐려지네."
조금 전까지만 해가 반짝거리며 모든 걸 태워버릴 것처럼 날이 뜨거웠는데, 순식간에 구름이 지더니 오후 3시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어두컴컴해졌다. 동해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 한 바구니 가득 안고서 얼음이 달각거리는 초코라떼만 연신 마셔댔다.
- 혁재야, 나 지금 막 호텔에 도착했어.
"피곤하겠다. 저녁은 먹었어?"
- 이제 곧 먹으러 나갈 거 같아. 혁재 너는?
"나는 간단하게 챙겨 먹었지."
- 또 시리얼만 먹었지? 아니면 라면? 밥을 먹어야….
- 동해 씨, 이제 곧 저녁 먹으러 갈 거야. 슬슬 준비해.
- 아, 네! 혁재야, 내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동해, 비가 올 거 같아. 항상 조심하고."
- 응응. 혁재야,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동해."
그리고 이 통화가 동해와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 출장 첫날부터 회식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상사 덕분에 꼼짝달싹 못 하고 잡혀버린 동해는 연신 내게 미안하다며,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그 연락은 동해와 나누었던 마지막 연락이 되어버렸다. 그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강하게, 고집을 부려서 나 때문에 곤란하더라도 통화를 해야 했는데- 하고 후회를 해보았지만 지난날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 8월 25일 오전 7시입니다만 현재 기온은 영하 23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어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날씨입니다. ]
[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에 통신, 교통 등 모든 것에 마비가 오고 있습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를 해두셔야 할 거 같습니다. ]
[ 현재 시각 오전 8시 27분입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8월임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
[ 전문가들조차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
[ 한 번. 지직. 시작한 눈은 멈. 지직. 생. 지지직.하지 지지직. 있습니다. 지직. 지지직. ]
어제 보았던 구름이 심상치 않다고 했더니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한여름에 갑자기 기온이 훅 떨어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쨍쨍하게 우리를 향해 열을 내던 태양은 하늘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더니 곧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 내리기 시작하더니 쉼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태양이 사라지자 기온은 점점 더 빠르게 떨어져 갔고, 눈송이는 점점 더 굵어져만 가는 데 비해 눈은 녹지 못해 쌓이기만 했다. 작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의 눈이 내리는 것도 있었지만, 녹지 못하는 것이 피해를 키워가고 있었다.
어느새 저층 높이의 건물들은 눈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고,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전봇대가 쓰러지는 곳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휴대폰이 먹통이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지막 희망처럼 붙잡고 있던 라디오마저 신호가 끊어졌다. 빗속에 홀로 살아남은 작은 불씨처럼 남아있던 희망마저도 사그라들고 말았다.
갑자기 시작된 겨울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우왕좌왕했고, 그건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라디오가 끊어지기 직전에 듣기로는 서로에게 대책 세우는 걸 미루는 듯했다.
"하아- 추워."
점점 더 떨어지는 기온 탓에 수도는 얼어 물이 나오지 못했고, 난방 기능이 멈춰버렸다. 그래서인지 집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입김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에 걸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껴입어 조금의 체온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나마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장식으로만 여겼던 벽난로 덕분이었다. 물론 계속해서 기온이 떨어진다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모든 것이 제한적이었으니까.
"동해는, 동해는 괜찮을까."
연락할 방법이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기에는 멈추지 않는 눈 때문에 무리였다. 그리고 나간다고 해도 모든 것이 마비되어버린 지금, 5층 높이의 건물을 집어삼킨 눈을 헤치고서 서울까지 갈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초반에 무리해서 나온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베란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때 너를 보내지 않았으면,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불안하지도 않았겠지. 동해야.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눈은 내린 지 3일 만에 멈추었다. 16층에 있는 나조차도 눈 때문에 땅과 가까워 보였으니까, 쉼 없이 내린 눈의 양이 대충 짐작이 갔다. 이미 12층 건물들은 눈 속에 파묻혀 버린 지 오래였다.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의 생사를 알지는 못했지만, 짐작할 수는 있었다. 나 또한 동해가 봐온 장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출장 전날, 혼자 있으면 잘 안 챙겨 먹는다는 걸 알고 있던 동해는 내 입맛에 맞춰 과자, 시리얼과 우유 그리고 컵라면과 생수를 사 왔었다. 가스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어느샌가 벽난로 옆에 쌓아두었던 장작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도 그렇게 많은 양을 쌓아두었던 것이 아니었지만, 계속 빠르게 떨어지는 기온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사용했다. 입을 수 있는 만큼 한껏 껴입어 많이 둔해진 몸을 일으켜 서재로 향했다. 장작 대신 쓸 만한 것들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열심히 뒤적거렸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쓸 만한 것들은 사전과 묵혀두었던 전공 책 뿐이었다. 전공 책과 사전을 몇 권 챙겨 벽난로 앞에 앉아 한 장씩 뜯어 넣었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불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어깨에 걸치고 있던, 반쯤 흘러내린 담요를 다시 정리해서 걸친 후 베란다로 향했다.
아직 살아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 건물의 유리창을 깨고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깨기가 쉽지 않을 텐데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유리를 내려치니 깨지는 곳이 생겼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어째서, 밖으로…."
무모하게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들이 이해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쉽게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쌓이고 쌓여 단단해진 눈을 밟고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집에서 가만히 앉아 동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막상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태양과 계속 떨어지는 기온, 아직은 여유가 있는 식량과 바깥보다는 따뜻한 집을 두고서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해야. 너라면 이런 망설임도 없이,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이런 상황인 건 신경 쓰지도 않은 채…."
그렇지만 나는 무서워. 밖으로 나간다고 바뀔 거 같지 않은 이 상황도, 그렇다고 덜컥 겁부터 먹고 집에 가만히 있다가 죽어갈 상황도- 전부 무서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동해야.
바깥 상황을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다시 안으로 들어와 벽난로 앞에 무릎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파묻었다. 그저 이 재앙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러면 내가 밖으로 나가는 일도, 집에서 죽어갈 일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
애초에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면, 그저 꿈속이라면 이런 갈등 따위 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너와 이렇게 강제적으로 헤어지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한없이 원망을 해보았지만, 무기력해질 뿐이었다. 원망만 해서는 아무런 것도 해결되지 않으니까.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제일 큰 배낭을 가지고 나왔다. 손전등, 과자, 라이터, 라면 등을 챙겨 마구잡이로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담아야 했다. 혹시 모를 일들을 대비해 구급상자와 두꺼운 담요와 수건 몇 장도 챙겨 넣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난 거 같아 신발장을 열어 등산화랑 등산 스틱을 꺼냈다.
'혁아, 이거 살까?'
'등산화는 왜?'
'너랑 같이 산에 가고 싶어. 그러니까 같이 등산 갈 때 신자. 응?'
'으으. 등산?'
'응. 같이 산도 타고 계곡에서 땀도 식히고 그러자.'
몇 달 전, 갑자기 등산화를 사자며 나를 설득하고 설득해 겨우 구매했지만 내가 정작 신을 일은 없었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서 항상 동해 혼자서 다녔었다. 항상 미안하다고 말로 사과는 했지만,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뒤늦게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단 한 번이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해서 같이 다녀올걸.
"바보 이동해. 같이 가자고 나 깨우면 되는 건데, 왜 그냥 자게 놔두는 거야."
등산화를 보자 휘몰아치듯 올라오는 여러 감정에 애꿎은 동해한테만 화풀이하고 있었다. 욕심 좀 내지. 전부 나를 위했던 것임을 알면서도 화가 올라왔다. 이제 와서 후회를 해봤자 바뀌는 건 없는데 말이다.
입고 있던 옷들을 움직이기 편하면서 따뜻하게 다시 껴입고서 목도리와 털모자, 여러 개의 장갑까지 착용한 후, 배낭을 챙겨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처음 신어서 뻑뻑하고 낯선 등산화를 우겨 신고, 동해가 쓰던 등산 스틱을 챙긴 후 살짝 얼어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집 안에 있을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온도 차이가 피부로 느껴졌다. 아직 오피스텔의 복도인데도 이렇게 추운 것이 느껴지니 공포가 몰려왔다. 밖에서 움직일 수는 있는 걸까? 그냥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마음속의 갈등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전기가 끊어져 엘리베이터가 멈춰있어 어쩔 수 없이 계단을 통해서 13층까지 내려갔다. 옷을 잔뜩 껴입은 상태에다 많은 짐까지 짊어지고 있어 훨씬 버거운 상태였다. 그렇게 끙끙거리면서 13층에 도착하자 이미 누가 밖으로 나간 것인지 유리창은 깨져있었고, 창틀은 두꺼운 이불이 깔려 있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유리 파편들을 조심하기 위해서 였을 테였다.
"으, 으아앗. 악! 아파."
짐가방과 등산 스틱을 먼저 창밖으로 던진 후, 창틀을 잡고 그 위에 올라탔다. 창틀 위에 앉아서 본 땅은 눈이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높아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겁을 잔뜩 먹어서일까? 조심해서 내려온다고 하다가 발을 헛디디어서 엉덩방아를 쿵 하고 찧어버렸다. 눈이라서 푹신할 거로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딱딱하기만 했다.
"으, 읏."
떨어지면서 잘못 떨어진 걸까.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리더니 곧 부어올랐다. 점점 커지는 고통에 가방을 열어 수건과 구급상자 안에 들어있던 작은 가위를 꺼냈다. 그러고선 끝부분은 최소한만 남기고서 지그재그로 잘라 긴 끈으로 만들었다.
발부터 조금씩 감아 올라가면서 발목을 감아갔다. 처음 해보는 탓에 버벅거렸지만 동해가 언젠가 내게 감아주었던 걸 되새기면서 감아갔다. 엄청 어설프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고정된 발목은 덜 아팠다. 가방에서 꺼냈던 것을 다시 정리하고서 등산 스틱에 무게를 실어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발을 땅에 디디었다. 통증이 올라와 아팠지만, 아예 걷지 못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사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도시 전체는 그대로 눈에 파묻힌 채 얼어있었다. 전봇대가 멀쩡하게 서 있는 곳이 없었고, 내가 걷고 있는 이곳이 길인지 건물 위인지 알 수 없는 앞은 얼어 죽은 사람들이 드물게 보였다. 절망적인 상황을 보고 있으니 나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하아. 추워. 아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얼마의 거리를 걸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추위에 온몸에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이곳이 어디인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조금씩, 느리지만 부산을 벗어나고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둔해졌다고 생각했던 추위와 발목에서 다시 느껴지는 고통에 그곳이 무엇이 되었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내 체력도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멈추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만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이를 꽉 물고 등산 스틱에 의지해 걸어가고 있을 때, 눈에 파묻혀 지붕만 겨우 보이는 주택이 하나 보였다.
"저기요- 계세요?"
똑똑. 지붕에 동그랗고 작게 나 있는,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창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걸까? 창문을 살짝 당겨보자 빗장이 걸려있는 건 아니었는지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살짝 비좁은 감은 있었지만, 짐가방을 먼저 넣은 후, 실례합니다- 인사를 하며 들어섰다.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아늑한 공간이 나를 반겨주었다. 창문을 다시 닫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빗장은 걸지 않았다. 그러고선 조금이라도 바깥바람이 세어 들어오지 않도록 커튼을 쳤다. 사람이 꽤 오랜 시간 살지 않았는지 다락방 안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부자리는 한쪽 구석에 남아있었다. 먼지만 살짝 털어내고서 자리를 폈다. 신고 있던 등산화를 벗자 퉁퉁 부어오른 오른발이 보였다. 이런 상황에 찜질할 수도, 치료를 받을 수도 없는데-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온몸을 이불로 감고 있는데도 서서히 느껴지는 추위에 입술이 점점 달달 떨려왔다. 이곳에 온도를 높일만한 게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몸에 긴장이 살짝 풀렸다고 통증이 몰려와 엉금엉금 기어 다닐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구석구석 돌아다녔지만 나오는 건 밧줄과 성냥개비가 잔뜩 들어 있는 성냥갑뿐이었다. 성냥팔이 소녀라는 동화책에 나오는 소녀처럼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다. 치지직- 하고 타오른 불은, 성냥개비가 짧아질수록 죽어갔다. 아주 잠깐이지만 느껴지는 따뜻함에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으응. 음…."
고된 하루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졸았나 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은 가지 않았다. 다락방에 걸려있는 오래된 벽시계는 오후 3시 4분에 멈추어 있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최대한 배터리를 아껴야 하기도 했지만, 액정 화면에 보이는 나와 동해의 사진을 보고 울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쉬었을 뿐인데, 잔뜩 부어올랐던 발목은 많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통증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가라앉았다는 것에 안도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성냥에 불을 붙여 작은 따스함을 느끼고 있을 때, 창 너머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 상황이 좋지 않아진 듯했다. 소리에 집중하니 멈추었던 눈이, 또다시 내리기 시작한 듯했다. 이제 막 다시 내리기 시작했는지 바깥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커튼을 열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저 웅크리고 앉아 더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동해, 보고 싶어."
내 앞에 성냥개비가 수북하게 쌓여 가는 만큼 소란스러움은 잦아들었다. 그것이 뜻하는 게 무엇인지 알 거 같았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수록 내 의지가,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바깥 상황은 알아야 할 거 같아서 담요를 두른 상태로 창문으로 향했다. 차라, 락. 조심스럽게 커튼을 젖히자 나를 반기고 있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전에 내렸던 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눈이 내리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불어놓은 바람에 마음껏 휘몰아치고 있었다. 많은 눈 때문에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저번과는 다르게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기세라면 온 세상을 눈으로 뒤덮은 후에야 멈출 거 같았다. 끝나기는 하는 걸까. 나아지기는커녕 절망적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에 좌절감 말고는 아무런 감정도, 욕구도 생기지 않았다. 입에 무언가를 넣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고, 기쁨과 행복이 뭐였는지 모를 정도로 무뎌져 있었다. 그저 모든 게 끝나버렸으면, 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불안한 마음이 다시금 몰려오자 커튼을 치고서 다시 이부자리로 향했다.
탁- 탁. 조금씩 떨어지는 듯한 기온에 다급하게 성냥을 켰다. 불씨가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추위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성냥에 불을 붙였다. 그냥 집에 있을걸. 이런 모험 같은 거 하지 말고, 오래 걸리더라도 가만히 집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걸.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도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동해 덕분이었다.
"후우. 괜찮아질 거야. 금방 끝날 거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바람은 어느 정도 잔잔해진 듯했는데, 눈은 여전히 매섭게 내리고 있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먼데,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성냥도 벌써 반 조금 넘게 남아 있었다. 계속 떨어지는 온도에 나는 급하게 다시 다락방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성냥이라도 더 나오길 바라면서. 하지만 찾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서 가방에 챙겨왔던 담요와 수건을 꺼내면서 라면도 같이 꺼내었다. 붕대 대신 쓸 여분 수건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옷 속으로 욱여넣었다. 머리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잠깐 걷어내고 담요를 먼저 덮었다. 그러고선 다시 이불을 덮어 조금 더 따뜻하여지도록 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갇혀있는 지금이 배를 채울 기회인 거 같아 억지로 먹기로 했다. 챙겨왔던 물은 꽝꽝 얼어있어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생라면만 먹어야 했다. 평소였다면 맛있게 먹었을 라면이 왜 이렇게도 맛이 없는지. 입안을 까끌까끌하게 거슬리게만 할 뿐이었다. 아그작. 그럼에도 생라면을 먹으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눈은 금방, 그치겠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리기 시작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리는 눈은 어느새 다락방의 창문 바로 밑까지 쌓였다. 더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준비해서 나가야만 이곳에 갇혀버리는 불상사를 면할 수 있었다.
조금 풀어두었던 짐을 다시 챙기고 오른쪽 발목에는 수건으로 감싸서 고정했다. 조금 남아있던 성냥도 챙겨 넣고, 성냥과 같이 발견했던 밧줄도 챙겨 허리춤에 꽉 묶은 뒤, 오른쪽 어깨에 남은 부분을 걸쳤다. 생각보다 긴 길이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커튼을 다시 걷어냈다. 짐을 챙기는 그 잠깐 사이에 눈은 더 쌓여있었다.
눈으로 인해 얼어가는 창문을 힘겹게 열어내고 짐가방부터 밖으로 던졌다. 그러고서 조심스럽게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아직 내린 지 오래되지 않아 내 몸은 그대로 눈 속으로 푸욱- 파묻혀 버렸다. 허리께까지 묻히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나아가야만 했다. 눈에 파묻힌 짐가방을 다시 짊어지고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여전히 내리는 눈이 방해되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를 악물고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점점 한계에 달하기 시작했다. 허리께까지 올라왔을 때는 버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데, 가슴께까지 올라오니 힘겨워졌다. 이렇게 눈 속에 파묻히는 걸까? 그냥 다락방에 있는 게 맞는 답이었을까? 수없이 질문하고 되뇌면서 정신을 붙잡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눈앞에 보이는 나무에 어깨에 걸치고 있던 밧줄을 묶어두었다.
"어? 악!"
그러기가 무섭게 무언가를 잘못 밟았는지 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당탕. 쿠쿵. 큰 소리가 잦아들고, 정신을 차려보니 대롱대롱 매달린 채였다. 고개를 힘겹게 아래쪽으로 돌려 발 밑을 살펴보니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져 내린 거였다. 오랜 시간 보수 공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직전에 나무에 밧줄을 묶지 않았다면 떨어지면서 놓쳐버린 등산스틱 대신 내가 저기 아래에 지붕과 함께 있었을 테였다. 두근두근.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아찔함이 생생하게 느껴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밧줄에 손을 뻗어 조금씩 타고 올라갈 생각이었지만 몸을 일으키기조차 쉽지 않았다. 짐가방의 무게도 한몫하는 듯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 서울의 근처는커녕 경상도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데, 벌써 모든 걸 포기하기엔 너무 일렀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계속된 갈등 속에서 점점 지쳐가기만 할 뿐이었다. 매달려 있는 것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고, 여전히 나는 밧줄에 몸을 뻗을 힘은커녕 손을 뻗을 힘도 없었다. 뚝. 뚝. 이런 상황에 야속하게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눈물은 눈꼬리를 타고 그대로 관자놀이로 향했다. 조금씩 떨어지던 눈물은 어느샌가 머리카락을 축축하게 적셔왔다. 눈물을 열심히 훔쳐보았지만,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울고만 있는다고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흐으. 흑. 동해야…. 엄마, 아빠…."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에 서글픔만 더 해졌다. 그렇게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 밖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있는 힘껏 외쳤다. 그러자 말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며 크게 들려왔다.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내 외침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제야 나는 다시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허리에 묶여있던 밧줄을 칼로 끊어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리에 묶여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 시간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서인지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통증과는 별개로 다시 위로 올라왔다는 안도감과 죽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 없었다.
"괜찮으세요?"
"네? 아,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저희와 함께하시죠. 이런 날씨에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아까보다는 소강상태였지만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이가 선뜻 베푸는 선의를 받아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인간이란 이런 악한 상황을 이용해 나쁜 짓을 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 내 고민을 눈치챘는지 거절해도 된다며 멋쩍게 웃어 보이셨다. 나를 구해주신 분들인데, 너무 나쁜 쪽으로만 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염치없지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을 따라갔다. 계속 한없이 따라가자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 나와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머지 않은 곳에 있다는 임시 거처는 정말 가까이 있었다. 아마 내가 중간에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더 일찍이 그들과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창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행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으셔서 큰일이라도 당하신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자신들을 걱정하던 이들을 달래주기 바빴다. 그 옆에서 나는 쭈뼛거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어수선하지만 여기서 몸 좀 녹이세요."
"감사합니다…. 저,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유연이라고 해요."
"아, 저는 함민우라고 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통성명을 하게 되네요."
"유연 씨, 민우 씨.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혁재라고 해요."
늦게라도 통성명을 하고 나니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말이 조금씩 트기 시작하고, 어째서 조금이라도 안전한 이곳이 아닌 위험이 가득한 밖에 있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유연 씨가 옅은 미소를 띠며, 혹시 모를, 도움이 필요한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동해가 아니었다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텐데, 아까 같은 상황에서는 그대로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었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도우려고 하는 유연 씨와 민우 씨를 보고 있으니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것 같았다.
"혁재 씨. 혁재 씨만 괜찮으시다면 저희랑 같이 가실래요?"
"네?"
"아까처럼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고, 혼자보다는 여럿이 조금 더 안전하고 든든하잖아요? 아, 그렇지만 혁재씨가 불편하시면 굳이 저희랑 같이 안 하셔도 괜찮아요. 강요는 하고 싶지 않아요."
민우 씨의 제안에 고민이 되었다. 아직도 그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짐이 될까 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살짝 절뚝거리면서 걷는 내 오른발도 신경이 쓰였다.
"먼저 제안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제가 짐이 될까 봐요…."
"짐이라니고 생각 안 해요. 서로 돕고 사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오른발을 다치기도 했고…."
"음, 혁재 씨. 저희랑 같이 가고 싶어요?"
내가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면 같이 하고 싶었다. 단지 다친 발 때문에 고민을 하는 거였으니까.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앞으로 나아가는 건 고되고 외로운 거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저희랑 가는 게 싫은 게 아니라면 같이 가요, 우리."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우리는 서로가 가지고 있던 식량들을 조금씩 꺼내 나누어 먹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를 나누었다. 모두 시작은 달랐지만, 끝은 같았기에 어려운 건 없었다. 남은 식량과 날씨가 걸리는 걸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눈은 거의 그친 듯 보였다. 약한 눈발만 흩날릴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흩날리는 눈도 사라질, 그런 상태였다. 눈이 그쳐가는 지금에 조금이라도 이동하기 위해 피워놨던 불을 끄고, 먹던 것들을 정리하면서 짐을 다시 챙겼다.
"계획대로 저와 혜윤 씨가 앞장설게요. 다들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소리쳐서 알려주세요. 더이상의 이탈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이탈. 내가 합류하기 전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의견이 맞지 않는 이들이 생겼고, 그 결과 찢어졌다고 했다. 밖에서 무리 지어 이동하던 중 갑자기 이탈하다 사고를 당한 이들도 있었고, 아까 모여있던 곳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는지 민우 씨는 재차 강조해서 말했다.
끄덕끄덕. 혼자였을 때보다는 안정적인 지금이 더 좋아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우 씨와 혜윤 씨가 앞장을 섰고, 그 뒤로 나와 유연 씨 그리고 휘현 씨와 도유 씨가 뒤에서 우리를 따라왔다. 거동이 조금 불편한 나를 모두가 배려해줘서 여정이 힘들지는 않았다. 단지 다시 내린 눈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디고 불편하다? 딱 그 정도였다. 다행히도 조금씩 내리던 눈은 완전히 멈추었다. 여전히 하늘은 구름 전체로 뒤덮여 햇빛 하나 없었지만, 익숙해진 탓에 불편함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보이면 그곳이 어디든 들어갔다. 그때마다 체력 보충을 할 겸,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그래도 짧았지만 혼자 다녔던 그 시간보다는 훨씬 편했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크게 다가왔다. 이들과 같이하면서 여정을 같이 시작한 지 열흘 정도 흘렀을까? 눈 때문에 시간에 비해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3분의 1은 온 듯했다.
"이제 대구 근처인 것… 아아악!"
"혜윤 씨! 민우 씨!"
"아, 아, 안 돼. 안 돼!"
"혀, 혁재 씨! 위험해요!"
내 옆에 유연 씨와 휘현 씨가 나를 뒤로 당겨서 살 수 있었다. 대구 근처에 온 것 같다고 혜윤 씨가 말하는 동시에 땅이 푹 꺼지면서 혜윤 씨를 잡아당기던 민우 씨가 같이 떨어졌다.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봐 손을 뻗으며 걸음을 떼기 무섭게 쌓여있던 눈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떨어진 이들을 덮쳐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에 모두가 당황한 채 굳어 있을 뿐이었다.
"일단은 저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까요? 한 번 무너진 곳이라 언제 또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요. 도유 씨는 제 짐 좀 챙겨주실래요? 아무래도 혁재 씨 부축을 해줘야 할 거 같아서요. 휘현 씨, 혁재 씨 부축하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도유 씨의 말에 정신을 차린 유연 씨는 아직도 멍한 나를 휘현 씨와 같이 부축하며, 무너진 곳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리를 피하자마자 다시 또 무너져 내렸다.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아니,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불가능해졌다.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이렇게 비참할 줄 몰랐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에게 남은 건 길고 긴,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 민우 씨와 혜윤 씨에게 생긴 일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우리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어요.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우리 서로 이겨내요."
애써 밝게 말하는 도유 씨 조차도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있는 상태였다. 유연 씨의 동공에는 생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고, 휘현 씨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알고 지냈던 나조차도 이렇게 힘든데,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한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나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그 흔한 위로조차도 할 수 없었다. 내 섣부른 위로가 오히려 독이 될까 봐.
"… 조금 돌아가겠지만, 다시 이동, 해볼까요?"
우리 사이의 긴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유연 씨였다. 그 탓에 모든 이목이 유연 씨에게로 집중되었다. 유연 씨는 이제 괜찮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이동하자며 일어섰다. 쉬어갈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출발하자며 옷을 털어내고 짐을 챙기는 유연 씨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아슬아슬해 보였다. 애써 밝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등 뒤로 보이는 깊은 그늘은 숨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긴 침묵과 함께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그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한껏 가라앉은 분위기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많이 조심스러워졌다는 것이었다. 도유 씨와 휘현 씨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시답잖은 농담도 하고 내가 재미없는 개그도 해봤지만, 아무런 장비 하나 없이 바다 깊은 속으로 하염없이 가라앉는 것처럼, 안 그래도 우중충한 분위기가 더 가라앉을 뿐이었다. 몇 시간 전이라는 과거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웃음기가 사라진 우리는 모든 촉각이 예민함 그 자체였다. 한껏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들리면 다들 크게 움츠러드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였다. 그렇게 한껏 움추려든 상태로 이동을 하다 보니 모든 면에서 많은 에너지 소모가 있어 예전처럼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 못했다. 쉬어가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몇 날 며칠을 걸었으면서도 경상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상이 눈에 파묻힌 채, 햇빛 하나 없이 지낸 지 17일이나 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서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모든 걸 포기하고 체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여전히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태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환호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서울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조금씩 복구가 되기 시작하면서 태양의 모습이 나타난 지 하루 만에 통신이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휴대폰은 불능이었지만 라디오는 전파가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챙겼었던 라디오가 이렇게 쓰이게 될 줄 몰랐는데…. 이렇게라도 세상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 이상 기후가 사라진 현재, 피해가 심각합니다. ]
[ 유럽과 미국 등 주요 도시는 아직 복구를 진행 중인 거로 나오며, 인명피해의 크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합니다.]
[ 현재 서울에서 발생한 사상자만 2천 500명이 넘는 거로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피해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이곳에서 끝맺음하고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유연 씨와 도유 씨 그리고 휘현 씨와는 여기까지만 같이 하기로 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덕분에 제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안고 헤어지고서 사람이 비교적 적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적은 곳이 조금이라도 신호가 잘 터지겠지 싶은 마음에서였다.
세상에 오랜만에 울려 퍼지는 소식에 희비가 교차했다. 서로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살아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기뻐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슬퍼하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나는 신호가 터질까 싶어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먹통이던 신호가 가기 시작하고, 오랜만에 듣는 신호음을 듣고 있자니 온몸이 한껏 긴장해버려 굳어버렸다.
"동해야, 동해야. 제발, 제발. 전화, 받아줘."
제발 살아있다고 내게 말해줘. 제발, 동해야. 뚜르르. 계속 이어지는 신호음은 끊어질 줄 몰랐다. 길게 이어지던 신호음 끝에 나를 반기는 건 익숙한 여자 목소리였다. 그러면 나는 다시 전화가 걸릴 때까지 붙잡고 걸어댔다.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서. 그렇게 5번이 넘어가고, 아주 작은 희망마저 사그라져 갈 때 전화를 받았다.
"여, 보세요? 동해야?"
- 이동해 씨 가족 되시나요?
"누구… 세요? 동해는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닐 거라고 외치면서 사그라져 가는 희망을 잡아보았지만, 내 예상은 비껴가지 못했다. 죄송, 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머뭇거리면서 내게 사과를 해왔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그 자리에서 목이 터지도록 울기만 했다. 내 삶의 변화가 찾아와버렸다. 동해가 없는 삶의 시작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 모든 것이 안정화 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슬픔을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내 옆에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갑자기 슬픔이 밀려오는 때도 있었지만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아직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아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불편함은 있었지만, 눈에 갇혀있던 때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여전히 전문가들은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었는지, 모른다고 시종일관 답을 할 뿐이었다. 무책임하게 들렸지만, 사람이 만물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뭐든지 알기는 힘들 테지.
"원인을 찾는 거보다 먼저 통신이랑 난방부터 해결해주면 좋겠네."
말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띠링- 통신망이 이제 완전히 회복된 것인지 그동안 밀려 있던 연락이 파도가 치듯 밀려왔다. 시끄럽게 울리는 수많은 알림 속에서 '♥동해♥' 라고 저장된 이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떨려오는 심장을 다잡고 알림 확인을 했다. 생각보다 긴, 문자에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글에서도 느껴지는 동해의 다정함에 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이 한 번에 터져버렸다.
[ 혁재야, 너무 많이 보고 싶다.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하네. 눈은 좋아하면서 추운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네가 걱정이야.
지금 바로 전화하고 싶은데, 회의 중이라 눈치 보면서 몰래 문자만 작성하고 있어.
회의가 끝나는 대로 바로 전화할게. 아직 6일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
그래서 지금 무척이나 후회 중이야. 그냥 핑계란 핑계는 전부 되면서 오지 말걸- 하고 말이야.
지금만 보면 군대 갔을 때는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어.
너랑 함께하지 못하는 1분 1초가 이렇게나 아까운데 말이야.
계속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면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더 찍어둘 걸-
후회만 되는 시간의 연속인 거 같아. 혁재 네가 알면 화낼지도 모르겠다.
몰래 찍은 사진까지도 합치면 안방을 채우고도 남는데- 여전히, 많이 부족한 거 같아.
아, 이따가 다시 써야겠다. 부장님이 내가 딴짓하는 걸 봐버렸어. ]
[ 전화하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못했네. 목소리 듣고 싶었는데 말이야.
회의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부장님한테 잔소리를 쉼 없이 들었어.
안 들킨다고 조심했는데, 역시 부장님의 레이더에서 벗어나기는 힘든 거 같아.
점점 추워진다. 혁재야. 너는 따뜻하게 하고 있을까?
난방의 기능이 많이 떨어진 건지. 바깥의 상황이 대충 짐작은 가지만 괜찮을 거로 생각해.
그냥 단순한 날씨의 변덕이 아닐까? 그래도 눈이 쌓이는 모습을 보니 복잡해진다.
그 전에 장을 봐와서 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집에 혼자 있을 네 걱정에 불안해지기만 해.
빨리 보고 싶다. 혁재야. 사랑해. 멀리 있는 지금도 나는 계속 혁재, 네 생각뿐이야. ]
[ 너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워진다. 사랑해. 혁재야, 사랑해.
꼭 살아서 이 말을 네게 내뱉고 싶어. 그때까지 우리 꼭 살자. 사랑해. ]
"… 거짓말쟁이. 바보 멍충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문자에도 여전히 내 얘기뿐이었다. 자신도 무서웠을 거면서 내색 하나 없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졌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거짓말쟁이. 나한테 보낸 문자에는 꼭 살아서 보자고, 그렇게 해놓고서 지금 너는, 내 옆에 없잖아….
나도 많이 보고 싶어. 아직도 나는 네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꼭 거짓말인 거 같아. 아직도 여전히 꿈속인 것만 같아. 그래도 이겨내야겠지.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겠지. 그러니까 계속 나 지켜봐 줄래?
"나도, 나도 사랑해. 동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