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여름
단달
작품 내 사망 요소가 있습니다.
이동해가 죽었다.
나뭇가지에 걸린 얼음 결정이 겨우 녹아갈 무렵 날아든 부고는 혁재의 책상 한켠에 담담히 놓여 있었다. 동창이 죽었다던데, 친했니? 어머니의 말에 넥타이를 끄르던 손이 멈췄다. 받아 적던 순간의 다급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충 갈겨 쓴 필체로 적힌 글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유준우 전화. 부고, 이동해. ○○병원 장례식장 ×××호.
“오랜만이다.”
메모에 적힌 병원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 알던 번호는 없는 번호라기에, 졸업 앨범 보고 전화했어. 연락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준우에 혁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우가 염려하는 지점을 안다. 유학이 육 년. 돌아와 눈앞에 닥친 삶만 어찌저찌 살아내기를 구 년. 기실 십오 년간, 동창들 사이에 얼굴을 비춘 적 없었다.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준우와 인사를 주고받은 적이 몇 번, 그게 다였다. 혁재는 낡은 앨범을 뒤져가면서까지 이동해의 부고를 알린 준우를 탓하지 않았다.
혁재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하나둘 모여든 3학년 2반의 얼굴들이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혁재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이에는 눈가가 이미 벌겋게 물든 몇몇도 섞여 있었다. 이름도 선뜻 기억나지 않을 만큼 데면데면한 사이였지만, 기억 속 장면들은 혁재의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교실 뒷문과 가까웠던 이동해의 자리에 늘상 모여있던 모습. 우르르 복도에서 공을 차다 선생님께 혼나던 모습. 아마 오늘날까지도 이동해의 친한 친구였을, 얼굴들.
자연스럽게 앞선 그들을 맞이한 것은 동해의 어머니였다. 벌써 왔니, 천천히 와도 되는데. 오느라 고생했다. 와줘서 고맙다. 놀러 온 아들의 친구들을 맞아주던 여느 날인 것처럼, 환하게 반긴 얼굴이 웃었다. 그중 누군가 하나가 동해의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무너지는 동해의 어머니를, 동창들을 보았다. 혁재는 그저 뒤에 선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묵묵히 음식을 나르고 손님들을 안내하며 친구 아닌 친구 역할을 치러내다, 문득 가만히 멈추어 섰다. 모두의 눈물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공간 속, 한참을 있어도 혁재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얼떨떨한 기분만이 감돌고 있었다. 혁재는 저와 주변 사이에 아주 엷은 막이 놓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준우의 전화 한 통으로 뜻하지 않게 불시착하게 된 현실 속에서, 오로지 저만이 유리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사진 속 흑백의 이동해는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동해가, 저런 얼굴이었던가. 혁재는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 저렇게 단단한 나무같은 모습이 되었을까. 완연히 푸르른 거목이 되어가는 시간, 그 초입으로 접어든 얼굴. 사진에 담긴 것은 시간의 흔적이었다. 혁재가 알았던, 그리고 알지 못하는, 제가 기억하는 순간과 그 이후의 시간이 모두 함께 벼려낸, 서른다섯의 이동해.
혁재가 가진 동해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일방적인 것이었다. 교실 구석에서 이동해와 그 친구들이 위험하게 축구공을 튕기며 놀던 모습. 한번은 창문도 깨먹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운동장을 누비다 그대로 운동장 한편 수돗가 아래 머리를 들이대던 모습.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에 잔뜩 젖어버린 티셔츠를 벗어, 물기를 짜내며 크게 웃는 것을 보았다. 유독 더웠던 날씨에 티셔츠는 금세 말라버렸다.
끌어모을 수 있는 기억의 편린은 모두 관찰일기 같아서, 혁재는 저도 모르게 머쓱히 목덜미를 문질렀다. 이동해와 이혁재는 한 교실 안에 공존하면서도 섞이지 않고 따로이 유영하는 물과 기름 같았다. 취미도, 취향도, 함께 노는 무리도 다르며, 서로 다른 둘을 섞어줄 유화제 따위도 찾아보기 힘든.
이동해가 찬 공이 골대를 가르고 환호성을 높이 올릴 때면, 이혁재는 운동장 한켠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높아진 햇빛이 등나무 아래 앉은 혁재의 흰 얼굴 위로 얼룩덜룩 그림자를 만들어갈 때, 동해는 이따금 그 등나무 아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을까. 순간 피해버린 눈동자를 슬쩍 다시 돌려보면 이제는 눈동자가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면 또 한참을 바라보다, 이동해와 시선이 스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뜻하지 않게 같은 조가 되었을 때도 있었다. 성이 같아 나란히 붙어버린 출석번호 탓이었다.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고 겨우 언제 시간 있냐 물었던 자신의 말에, 오늘 당장 교실에서 할래? 이동해는 그런 대답을 돌려줬었다. 그때는 그렇게 빨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줄 몰랐어서, 속으로 꽤나 당황했었던 것도 같다. 그날의 날씨가 어땠더라, 또 공기는. 혼자서 세 골을 넣고 더없이 환하게 웃던 이동해 위로 쏟아지던 햇빛이 어땠는지, 눈이 마주쳤던 순간 제 손바닥에 배어나온 땀이 얼마만큼이었는지. 혁재는 그런 것 모두를 기억했지만, 텅 빈 교실에 마주 앉아 묵묵히 숙제를 하던 그날의 일만큼은 주변의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교실에 굴러다니던 주인 모를 홍보용 부채로 펄럭펄럭 부채질을 하던 팔, 바람에 날리던 머리칼, 노트를 내려다보던 단정한 눈꺼풀과 콧날. 하복. 희미한 땀 냄새. 온통 그런 것만이 기억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이동해가 고개를 들면, 또 저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노트 빌려줄 수 있어? 나보단 네가 공부 더 잘하잖아. 바보처럼 웃는 얼굴에 묵묵히 노트를 내밀기를 되풀이했었다. 고마워. 돌려받는 노트 위에는 사탕 몇 개, 초콜릿, 딸기우유 같은 것들이 놓여 있어 괜스레 마음이 간지러웠다. 그게 우연히도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내심 기쁜 가슴을 숨기려 발끝만 내려다보기도 여러 날이었다.
운동은 싫어하느냐, 어느 날인가는 동해 자신의 관심사를 물었고, 다음에 같이 공부하겠느냐, 어쩐지 머뭇이다 입을 뗀 것처럼 보이던 문장은 혁재 저에게 맞추어 건넨 듯한 물음이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교실 앞, 저를 옆에 두고 선 담임이 유학 소식을 전하던 순간, 커다래진 눈동자와 마주했다. 아마도 그게 이동해와 서로 눈을 마주 본 가장 긴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혁재는 기억했다.
‘이혁재!’
저를 불러세운 두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하얘지도록 꽉 깨물리는 입술을 보았다. 어쩐지 자꾸만 입이 말랐지만, 그 순간의 놀라움이나 충격, 서운함이 뒤섞인 것 같은 그 눈빛은 다 제 마음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자신이 그 애에게 바랐던 것이 무언지 몰라 혼란했던 마음이 그때의 이혁재를 그렇게 만들었다.
‘잘… 지내. 아프지 말고.’
한참을 망설이며 떨어지지 못하던 동해의 입술이 겨우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그제야 혁재는, 털어버린 것처럼 돌아설 수 있었다. 발밑 깊은 곳에서 조용히 일어나려던 바람결은, 잔물결은 모두 그대로 덮기로 했다. 그저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의 흔들림이었을 뿐이다. 아직 나무의 꼴을 갖추기엔 멀고 먼 줄기가 가냘프게 나부끼듯, 저 역시 흔들리는 줄도 모른 채 철모르고 몸을 실을 뻔 했던 거라고.
바람도 물결도 인력이 모두 덮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 혁재는 때때로 이동해를 떠올렸다. 그때와 똑같은 사탕을 맛보게 될 때가 그랬고, 공을 차는 고등학생을 마주치게 될 때가 그랬다. 낯선 거리에서 우연히 준우를 마주쳤을 때도 이동해를 생각했다. 유준우는 벌써 두 번, 세 번씩이나 마주쳤건만 이동해는 우연히도 만나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제 손으로 덮어둔 그 아래 묻힌 저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할 용기가 오래도록 나지 않았다. 기억은 휘발성이라, 그렇게 두면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줄 알았다. 들추어 꺼내보지 않으면, 영원히.
담배 하냐? 묻는 준우에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나 한 대만 피고 온다, 하는 말에는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도 바람 좀 쐬어야겠어. 나지막이 답한 말에 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추운 밤공기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숨에 닿아 두 뺨 위로 얼어붙었다. 십오 년 만에 이뤄진 제대로 된 만남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라곤 고등학생 때의 사람, 고등학생 때의 일화, 온통 과거의 것들뿐이었다. 영목이 자식 애가 벌써 둘이라더라, 고등학교 땐 뻑하면 공이나 차다 귀 잡혀 끌려가던 놈인데. 푸스스, 희미한 웃음도 번져갔다. 장례식장의 풍경이란 늘 그랬다. 떠나는 이의 지난날을 회고하다가도, 남은 이의 살아가는 날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꼬박 삼 일을 되풀이하고 나면, 어느새 한고비를 무사히 넘긴 듯 삶은 또다시 무심히 흘러갔다.
“이동해도 그랬지.”
“…….”
“기억 나냐? 이동해, 툭하면 창가만 보고 있었던 거.”
담뱃재를 한 번 떨어낸 준우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뭐 하냐고 툭 치면 말이 없고, 얼버무리곤 잘 보지도 않는 교과서에 코 박았다가도 또 다시 창가만 보고 있고. 얼굴은 멍해가지고. 준우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저는 모르고 유준우는 아는, 그 시절 이동해의 이야기였다. 차마 눈 마주치기 어려워 제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동안의 이동해는 그런 모습을 띠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어, 걔가 왜 그러고 있는지. 담배를 비벼 끈 준우가 두 대째를 입에 물었다. 말을 고르고, 다시 담배를 물기를 반복했다. 그의 흡연은 종일 손님을 치른 피로를 녹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지금 이 시간을 끌어가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할 말이 있는 것도 같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까, 아마 너를 보고 있었던 거 같더라.”
고개를 들면 밤하늘은 서울답게도 까맣기만 했다. 막막한 하늘에서 뭘 찾아야 할지 몰라 헤매다 떨구지도 못한 고개가 초점을 잃었다. 역재생하듯 되감긴 테이프가 어느새 저를 그 시절, 그 창가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교실의 끝과 끝. 뒷문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언제나 떠들썩한 목소리를 높이던 이동해와, 창가에 앉아 책만 펴놓고 있던 이혁재.
그래서 연락했어, 달갑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와줘서 고맙다. 길게 연기를 뿜어낸 준우의 말 이후, 두 사람의 대화는 한참이나 단절되었다. 풀벌레 소리 하나 없는 차가운 겨울, 해묵은 기억만이 공기 중을 부유했다.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는 까만 밤 위로 희뿌연 연기만 한숨처럼 피어올랐다.
“지나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
담담하게 이어지는 목소리도 어딘가 아득하기만 했다. 달갑지 않았던 게 아니야. 혁재는 그 말도 끝내 하지 못했다.
연락처 좀 줄 수 있나요.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던 동해의 어머니가 그렇게 물은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고등학생이 으레 그렇듯 친한 사이였다면 하루가 멀다고 서로의 집을 오갔을텐데, 그 시절에도 한 번을 마주한 적 없는 얼굴이었다. 이동해와 저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리라는 것은 동해의 어머니도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아닌 줄 알았다. 그저 아들과 같은 교실을 공유했을 뿐인 자신에게, 무얼 더 물을 것이 있겠는가.
“어서 와요.”
그러나 갑작스레 결정된 유학이 그랬고, 준우의 전화가 그랬듯, 뜻하지 않은 것들은 언제나 삶의 주변에 도사렸다.
동해의 어머니가 다정한 웃음으로 내어준 차를 조심스레 들이켰다.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혁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차의 쓴맛조차도 이겨버렸다. 주변은 온통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것들로 가득했다. 이동해가 생활하던 공간. 이동해가 쓰던 물건. 이동해가 남기고 간, 흔적.
혁재는 어쩌면 지금 인생에서 가장 가까이, 동해에게 다가서 있었다.
왜 낯이 익은가 생각했는데, 발인하고 떠올랐어요. 아들의 친구를 상대로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의 깍듯한 존대로 동해의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이게 맞는 건지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어쩌면 혁재에게 폐가 될지도 몰라, 지금도 자신이 없다고도 했다.
“그래도, 아무래도 이건… 혁재 씨에게 줘야 할 것 같아서.”
“…….”
거칠어진 손이 낯선 아들의 급우 앞에 조심스레 내민 것은, 조그마한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 속에 있는 것은 웃지도, 찌푸리지도 않은 무감한 얼굴이다. 나무 둥치에 기대앉아 눈을 감은 채, 특별히 예쁠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모습의, 빼빼 마른 어린 남학생.
학년이 바뀌고 처음으로 갔던 소풍날, 폴라로이드를 샀다던 반장은 사진을 찍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쟤는 사진 찍을 줄이나 알고 저러고 다니냐? 반 친구들의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찍어댔다. 다 큰 남자애들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보물찾기 시간, 지루한 몸을 기댄 찰나 들린 찰칵 소리에 혁재는 눈을 떴다. 왜 찍어? 물은 말에 그냥 연습이라던 반장의 말대로, 대부분이 흔들리고 번진 폴라로이드는 반 친구들 사이를 돌고 돌다 그대로 잊혀졌었다.
그날의 것이었다. 아직은 여린 가지를 흔들어놓던 바람이 불기도, 물결이 일기도 전. 공을 차는 이동해의 모습에 눈길을 빼앗기지도, 제대로 된 인사 한마디 해본 적도 없었던, 그날의.
“늘 지갑에 가지고 다니던 건데, 차마 물어보지를 못했어요.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조금 겁이 나서.”
애달프게 웃은 동해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에둘러 표현한 문장에 어렴풋한 후회가 묻어있었다. 이럴 거면, 물어볼 걸 그랬죠.
어머니가 직접 손에 쥐여준, 네 귀퉁이가 헤진 사진을 받아들고서야 혁재는 겨우 목이 메었다. 잘 찍지도 못한 흐릿한 사진 아래, 못 쓰던 글씨로 새겨넣은 몇 글자 글귀가 눈에 걸렸다. 나의 여름. 울음이 차올랐다. 뒤늦어버린 진실이 이제야 혁재의 곁에 성큼 다가섰다. 찰랑일 만큼 참았던 많은 것들이, 겨우 모든 걸 실감한 듯 쏟아져 내렸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휘발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가장 멀어진 뒤에, 가장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