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re white
취준심체요절
천사... 그것은 사실일까요. 과연 제 안에 천사가 깃들어 있을까요? 정말 그렇다면, 제가 그토록 사악한 행위를 하는 동안 천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전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전 늘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 안의 천사는 오직 내가 부를 때만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을요.
사실 교도소야말로 기도를 배우기에 이상적인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
그는 어느날 내 앞으로 왔다. 나는 그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 적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어떠한 모습이든 볼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와 닿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을 아는 듯 했다. 그가 위를 쳐다볼 때면 나는 그가 날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움찔 몸을 떨었다. 난 계속 그만을 생각했다. 그를 위해 태어난 존재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난 하늘이 그를 위해 안배한 창조물이다. 나에겐 '그렇게 보이는' 것만 있을 뿐, 펄떡이며 뛰는 심장과 뜨거운 피를 운반하는 혈액이 없다. 나는 그에 의해 꿰뚫렸다.
내가 태어난 이유 그 이상으로 그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이다.
그가 보는 시선 끝에 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나에게 배덕감마저 안겨주었다. 이것이 망상인지 합리적 예상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나는 나에게 있어선 안 되는 자아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어미를 처음 본 새끼오리처럼 그를 좇았다.
나는 그가 해온 모든 구원과 모든 죄악의 면면들을 보았다. 그가 나와 연결되기 전까지 그는 그저 교도소 구석에서 웅크려 울기만 했다. 그조차 하기 힘들 때 그는 엎드려 심호흡을 다섯 번 했다. 죄악을 통해 알게 된 그 행위는 일시적으론 그를 위로하는 것 같았으나 결과적으론 그를 더 좀먹었을 것이다. 심호흡을 한 수많은 날들이 지나고 그는 심호흡 대신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계획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다섯의 죄인을 구원했다. 살인자, 간음을 한 자, 물건을 훔친 자, 거짓을 말한 자, 남의 것을 탐한자.
지나간 자신의 생을 애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대신 복수를 해주고. 자신의 것을 나눠주고, 거짓을 말한 자를 진실히 간병하고. 또 다른 죄를 지으며 그들을 구원했다. 나로서는 그런 그의 행위가 퍽 이해가진 않았지만, 그럴 수록 그는 점점 더 하얗게 빛났다.
강단에서 그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내가 그에게 귀속된 것을 영혼으로 느낄 수 있었다.
꼭 나와주세요, 저 여기 있어요.
그가 이렇게 말할 때 나는 당장이라도 날아가 손을 잡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
"내 나아갈 길에 높은 담과 깊은 함정 많도다. 나약한 내가 능히 넘을 수 없으니 누구의 도움 있을까. 주님의 숨결이 나를 불어 담을 넘게 함이오. 주님의 손바닥 다리가 되어 함정을 건너게 함이로다."
그가 나오는 길목엔 전도사와 성가대원들이 줄을 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를 본 전도사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그는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차림으로 얇은 티셔츠만을 입고 있었다. 전도사는 그를 보고는 왜 두터운 옷을 입지 않았느냐며 책망하는 어조로 말하고는 두부를 내밀었다.
"두부처럼 하얗게, 다신 죄짓고 살지 말라고 주는 겁니다. 혁재씨, 들어요."
그는 그걸 빤히 쳐다보다가 손을 치며 두부를 엎었다. 성가대원들이 놀라 심벌을 떨어트렸다. 파공음이 단말마처럼 났다. 모두가 놀라 그를 바라보는 경악의 시선 속에서, 그는 담담히 말했다.
"너나 잘하세요."
-
그는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머리를 새빨갛게 염색했다. 독을 품은 작은 곤충 같았다. 머리색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작전을 이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집을 구한 그는 바로 한 가정집으로 갔다.
"왜 이러시는 거에요. 도대체!"
그가 숨을 헐떡이며 한 쌍의 중년부부를 바라보았다. 긴장으로 빳빳해진 그의 뒷목은 평소보다도 더 희게 질려있었다.
제발 용서를. 원모 어머니... 용서를... 그는 손가락이 다 없어질 때까지 용서를 빌 작정이었다. 섬뜩한 칼날이 허공을 가르고 그의 새끼 손가락이 떨어져나갔다. 부부는 경악을 하며 그를 말렸다. 그는 더 속죄하지 못해, 용서를 구하지 못해 원통함을 느꼈다.
"용, 끅... 아. 용.."
한 단어도 채 말하지 못하고 그는 쓰러졌다. 부부가 노란 장판에 피를 황급히 닦았다. 그들이 부른 구급차가 급히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결국 기절해 이송되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13년 동안 번 돈을 몽땅 수술비로 써야 했다. 그리고 6일 후, 그는 한 베이커리로 갔다.
딸랑. 그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주인은 그를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아는 척을 했다.
"혁재니? 오랜만이다. 근데 너 머리는 왜 그래?"
"그냥. 친절해 보일까 봐요."
매장 홀에서 가게 주인과 그가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믿을 수 없게도 나는 너무도 떨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붉어진 얼굴을 가리려 빵이 담긴 상자를 내 키보다도 높이 쌓아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동해야, 인사해라. 네 사수다. 이혁재라고, 내가 얘기했지?"
"안녕하세요."
대답하며 나는 박스 틈으로 그의 얼굴을 같은 높이에서 봤다. 난 순간 손에 힘이 풀려 박스를 몽땅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 이 자식아 내가 새로 사람 온다고 얘기했잖아. 나는 대답 없이 그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리곤 물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
"네, 형."
나는 그때의 내 표정을 기억 못 한다. 아마 매우 멍청하게 보였으리라. 혁재는 그런 나를 조금은 한심한 듯이 쳐다보고 지나쳐갔다. 혁재의 빨간 머리카락이 계속 눈에 잔상처럼 남았다.
빨강은 십자가에 흘러내린 희생의 색. 정신적 힘과 속죄의 징표이자 죄악을 드러내는 피의 색이다. 혁재의 빨강은 이 중 그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곧 다시 나의 시선에 있는 붉은색에 집중한다.
"뭘 봐?"
"아니에요, 형."
난 매대의 딸기무스 케이크로 시선을 돌렸다. 홧홧해진 손이 차가운 금속을 만지고서야 좀 식었다.
-
혁재가 행하는 구원과 속죄의 끝은 폭력이었다. 나는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나에겐 방관 또한 적극적 동조나 다름 없었다. 혁재는 내 생각을 알았을까. 나는 그를 지켜볼 수록 점점 더 초월자에서 한 명의 사람이 되었다. 이전의 내 기억은 희미해지고 혁재가 아는 이동해라는 사람으로서의 자아만이 강하게 자리 잡아갔다.
"죄를 지었다, 지었으면. 반성하고, 다신 안 그런다 결심하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안 그래요 형?"
"나 사람 하나 더 죽이려고."
"네?"
"동해야. 너 나랑 자고 싶어?"
혁재의 집 안은 혁재의 머리처럼 온통 붉었다. 모든 게 나에겐 너무 버거웠다. 나는 신발장 앞에 서서 바닥만 쳐다보았다. 혁재는 씻고나와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내 뒤에 섰다. 온몸이 홧홧해졌다.
"저 겁주려고 이러는 거죠?"
혁재는 말 없이 나를 계속 응시했다. 나는 주춤거리며 방 안으로 몰렸다. 뒷걸음질 치는 나를 혁재가 끈질기게 따라 붙었다.
"나 정 떨어지라고 이러는 거죠?"
혁재는 나를 계속 바라봤다.
"넌 좋아하는 사람이 이러면 정떨어져?"
어느새 침대에 털석 앉은 혁재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자연스레 교도소 강단에서의 모습과 겹쳤다. 나는 혁재의 머리통을 잡아 우악스레 입을 맞췄다. 흰 얼굴이 찡그려 주름이 졌다.
나는 입을 맞추며 숨을 들이켰다. 혁재 또한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까이서 맡는 그의 냄새. 이것이 나에겐 가장 비현실적인 현실이었다. 그가 나와 눈을 맞춘다. 배를 맞댄다. 뜨거운 성기 둘이 동시에 문질러졌다. 빳빳하게 선 아래는 질척한 액체를 흘렸다.
나는 좀 더 혁재의 체취를 강하게 들이켰다. 아마도 난 영원히 그에게 묶여있으리라.
아침이 됐다.
쏟아지는 빛에 눈을 떴다. 혁재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깼어? 짐을 싸고 있던 혁재는 어제 아무 일도 없던 양 태연했다. 그는 어제 괜찮냐는 둥의 질문을 하다 하고싶던 얘기를 꺼냈다. 모든 게 갑작스러웠다.
"아이를 잘 데리고 있다가 건강하게 돌려주는 건 좋은 유괴랬어. 어차피 부잣집이니까 몸값 조금 뜯어내는 건 일도 아니고. 며칠 속이 타겠지만 감동적으로 다시 만나면 더 화목한 가정이 된댔어. 그래놓고 원모를 죽였어 백 선생이... 애가 자꾸 우니까, 5분만 더 울면 죽여버리겠다고 겁을 줬어. 근데 정말 죽였어. 살았으면 딱 지금 네 나이였을 텐데 죽였어. 근데 경찰이 목격자를 찾아냈어. 내가 원모를 데리고 목욕탕에 간 걸 봤대."
"..."
"어느 날, 시장에 다녀왔더니 동생이 없었어. 백선생한테서 전화가 왔지. 내가 백선생 죄를 다 뒤집어 쓰고 자수하지 않으면 동생은 죽는다고. 그러니까 유괴범이 유괴범 동생을 유괴한 거야. 재밌지."
"..."
"운전은 잘 해?"
나는 폐교 운동장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혁재의 일을 마무리할 장소를 물색했다. 나는 여기서 정확히 뭘 하려고 하는지, 끝나면 뭘 할 건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인지 따위의 자질구레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물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물어선 안 됐다. 그것이 그에 대한 나의 존중이었다.
폐교에 갔다온 뒤, 혁재는 잠을 많이 설쳤다. 나는 그가 왜 그런지 알았다. 동생이 죽기 전 남긴 것으로 보이는 편지를 읽은 뒤였다. 나는 혁재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렸다. 거무튀튀한 아지랑이 사이로 울고 있는 혁재가 보였다. 혁재의 검은 머리칼이 그가 흐느낄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나는 그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내 목을 졸랐다. 왜 그랬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그가 예전에 나에게 해줬던 얘기를 했다. 세상에는 좋은 유괴가 있고, 나쁜 유괴가 있어... 그는 죽으라고 소리치며 나를 더 강하게 압박했다. 나는 이내 허물어졌다. 나는 곧 혁재가 다신 보지 못할 얼굴로 변해 혁재에게 말했다.
형, 나는 형을 원망하지 않아. 나는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혁재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통곡하는 소리가 짐승의 것 같았다. 나를 정신 없이 끌어안으며 흘리는 그 눈물이 꿈임에도 뜨거웠다.
다시 아침이 됐다.
며칠 후 혁재는 여덟 명의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는 부모들이 비디오 테이프를 보며 울며 절규하고, 분노하며 쓰러졌다. 혁재는 그들에게 두 가지 복수안을 제안했다.
법적인 처벌을 원한다면 최반장에게 이 사람을 인도하고, 좀 더 신속하고 개인적인 처벌을 원한다면 여기에서 당장 가능합니다.
그들은 직접적이고 신속한 단죄를 선택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백선생을 원하는 방식으로 찔렀다. 왜 죽였냐고 묻는 질문과 분노에 찬 외침이 유족들이 대기하는 복도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피가 낭자한 비닐과 백선생의 사체는 다같이 치웠다.
사람들은 멍하니 아무 말도 않고 백선생을 산에 묻었다.
-
혁재는 하려던 일을 마쳤다. 하지만 홀가분해 보이진 않았다. 혁재는 아쿠아리움에서 원수에게 전화를 걸던 그 시절에 멈추어 있는 듯했다.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백선생에게 재워달라고 하던 그 때.
세상에는 좋은 유괴가 있고, 나쁜 유괴가 있어. 아이를 잘 데리고 있다가 건강하게 돌려주는 것은 좋은 유괴지. 며칠 속이야 타겠지만 감동적으로 다시 만나면 더 화목한 가정이 되니까.
백선생의 말은 아직도 혁재의 귓가에 윙윙 울렸다. 동해는 혁재가 왜 아직 속죄가 끝났다 생각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백선생과 혁재는 별개의 인간이다. 혁재는 원수의 죄의 부속이 아니다.
이것은 혁재에 한정되지 않았다. 모두가 단죄를 했음에도 또 다른 죄를 지었다는 것에 마냥 기뻐하진 못했다. 그들은 베이커리 안 원형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유족 중 하나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유족들이 당황하며 쳐다보았다.
"아니, 오늘 꼭 생일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그 말을 들은 유족들은 노래를 다시 제창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 생일 축하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맛봤다. 각자는 혁재에게 돈을 받을 계좌와 연락처를 메모장에 남겼다. 그리곤 대화가 끊겼다.
정적을 깨고 한 남자가 말을 꺼냈다.
"불란서에서는, 이렇게 말이 끊어질 때는 천사가 지나가는 거라고 그러던데."
혁재를 제외한 모두가 천장 샹들리에를 바라보았다. 모두 각자의 천사를 발견한 것이다. 인간은 죄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천사의 존재와 구원을 느끼게 된다. 유족들은 죄를 지음으로써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 사이 혁재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3초 후. 유족들은 뭐에 홀린 듯 바깥 교통상황을 걱정하며 베이커리를 나섰다.
혁재만이, 이곳에 남아있다.
혁재는 모자를 푹 눌러 쓰려했으나 놓쳐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모두가 죄를 잊고 본래의 자리로 걸어가는데 혁재는 혼자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혁재는 땅에 떨어진 모자를 가방에 눌러넣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동해는 어디선가 나타나 말없이 혁재의 뒤를 따랐다. 한참을 따라가던 동해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혁재는 어려서 큰 실수를 했고, 자기 목적을 위해 남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얻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동해는 혁재를 좋아했다. 동해는 계속 혁재의 뒤를 따랐다.
형! 동해가 혁재를 불렀다. 혁재는 뒤돌아봤다. 동해가 새하얀 두부 케이크를 들고 서있었다.
“이거 먹어요.”
“왜?”
“오늘 꼭 생일 같아서.”
“...”
“하얗게. 깨끗하게 살아요. 더. 우리 같이.”
혁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해는 그것이 꿈에서 본 표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동해는 케이크를 한 번 찍어먹고는 혁재의 코에 크림을 묻히고 웃었다. 동해가 들고 있는 케이크에 혁재는 얼굴을 박았다. 새하얗게 눈이 내렸다. 동해의 뒤로 가로등 불빛과 자동차 불빛이 아스라이 빛났다.
혁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이번에야말로 동해는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동해는 혁재를 향해 웃었다. 혁재와 같은 위치에 있고 싶은 마음으로.
혁재는 끝내 울고 말았다.
눈은 다음 날까지 계속 내렸다.